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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건아, 난 너를 보면...."

"......"

"나쁜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어. 왜냐하면 넌... 네 인생에는 계속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거든."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젖어 들기 시작하는 희건의 눈가를 꾹꾹 눌렀다. 울지마. 속삭여 봐도 별 소용은 없었다.

_

“…형.”

희건이 내 손을 덮어 감쌌다. 단단하고 따뜻한 손이었다.

“형이 한 말 계속 생각해 봤어…. 영화는 끝까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어 줄 사람과 함께 봐야 한다는 거.”

속삭이듯 말하며 내 손바닥에 입술을 묻는다. 애정 어린 몸짓에 가슴이 아렸다.

“형은 중간에 박차고 나갈 사람이라 같이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은, 여전히 나는 모르겠어.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해 본 적도 없고…. 형이 하는 말 듣고 있어도 그냥…, 그게 뭐 어떻다고, 싶고 그랬어.”

희건의 말에 가슴 속에서부터 진심 어린 안도감이 퍼져 나갔다. 너는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알더라도 너만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형이 그렇게 사는 게 괴롭다면, 오래전부터 그랬다면… 지구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서 떠났던 거라면.”

“…….”

“그때까지는 어떻게 버텼던 걸까?”

희건의 말끝이 조금 떨렸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 돌아와도 돼. 내가 답을 알아. 희건의 메시지를 읽었을 땐 크게 와닿지 않던 말이었다. 녀석이 뭐라 하든 군말 없이 곁을 지킬 셈으로 왔으니까.

“걱정됐던 거지? 네가 원하는 선택을 하면… 네 친구들이나, 우리 가족이나… 내가, 충격받고 슬퍼할까 봐…. 참고 견딘 것도, 떠난 것도, 다 같은 이유였다는 거지.”

“아니야. 그냥 죽는 게 무서워서 그랬어.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

“들어 봐, 형. 아니, 사한아.”

희건이 내 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숨을 멈추고 녀석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주먼지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득바득 삶을 이어가는 건, 매일 들이닥치는 허무함을 참고 견디는 건….”

“…….”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일상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잖아.”

“…….”

“살아 있다는 건,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맞고 어제와 같은 날을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로 나와 이어진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일인 거야.”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말문이 막혔다. 눈만 끔벅이는 나를 향해 희건이 조금 더 다가왔다. 가까워진 얼굴에서 채 지워지지 않은 애티가 보였다.

“…언젠가 네가 다른 선택을 해도.”

예쁘게 자리 잡은 눈동자가 조금씩 물기를 머금었다.

“나는 너 원망 안 할게.”

그건 정말이지, 감히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말이었다.

“어떻게 나를 두고 갈 수가 있나, 어떻게 내 생각은 안 할 수가 있나, 그런 말 안 할게. 그냥….”

“…희건아.”

“기억할게. 네가 그렇게 좆같이 허무하고 외로운 매일을, 나를 위해 견뎌 줬다는 걸.”

“…….”

“내 곁을, 일상을 지켜 주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는 걸.”

나는 다른 답을 알아. 그러니 돌아와. 너 내 곁에 있어도 돼. 나는 그 모든 게 희건이 되는 대로 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저지른 잘못이 있고, 갚아야 할 빚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

응? 하며 희건이 내 손을 끌어당겼다. 한 번 떠올려 보지도 못한, 감히 기대조차 해 본 적 없는 위로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혹시 꿈일까? 그러나 손에 닿는 피부는 분명한 생을 담고 약동하고 있었다.

“응? 사한아.”

내 뱃속에는 뱉지 못한 말이 고여 썩어 가는 구덩이가 있다. 때로 달이 나를 지켜본다는 착각에 휩싸일 때면 머리 위에서 당겨 올리는 인력에 매달린 눈물 비린내가 코끝까지 번졌다.

“응?”

앞으로 내게 지금까지 겪어온 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야. 알지 못하는 미래는 오지 않을 거고, 밤마다 덮쳐 오는 지독한 허무함이 나를 좀 먹을 거야. 끝을 알려 주지 않고 덮쳐드는 생이 아득하고 두려울 거야. 하지만….

“……응.”

이 꼬마가 알아 주겠다잖아. 잠시라도 쉴 자리를 찾다 바닥까지 닳아 버린 내 고단함을.

“그러자.”

조심조심 이마를 맞대었다. 누군가 지나갈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하자.”

희건의 안도 어린 한숨이 내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 퍄퍄퓨

05.16 | 20:25
그루, 사한
@ 퍄퍄퓨

05.16 |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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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너무너무 좋아하는 소설......문장이 너무 예쁘면서도 감정을 따라가기 쉽게 잘 담아냈음
다만 ........
bl소설이라 추천하기 머뭇거려지는...
그런것이다
근데 진짜 잘썼음..
나도 인생에 희건이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누군가를 사랑해줌으로써 내 마음에 위안이 된다면 그 사람은 동의없이 도구로 사용되는건데 괜찮은건가...만약 내가 더이상 그 사람이 필요해지지 않는다면? 인간을 필요가치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는건가? 뭐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라서 이런거 생각할 시간에 잠이나 한시간 더 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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